하현우 (국카스텐) 복면가왕 9연승, 가창력과 밴드, 이카타

국카스텐 하현우 음악대장 (복면가왕)  "국카스텐할 때 저희는 스스로 불량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또래 애들은 다  여행가고 하는데 나는 왜 공사 현장에서 먼지를 마셔야 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그래서 세상 다 부숴버리자 그런 말을 했고 합주하면서도 분노의 대상을 찾았다.  어릴 땐 멋모르고 세상이 우릴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너무 불평등한 것 같고 그랬다." 첫 솔로 미니앨범 발매 (Ithaca 이카타) 기념 감상회에서 하현우가 한 말이었습니다 첫 밴드활동 처음 밴드활동 할 때 패배주의와 분노, 화로 가득했었다고 합니다.  하현우는 이카타를 막연히 동경해왔는데 '이카타로 가는 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적 구상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하현우는 고등학생 때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노래방에서 연습을 했는데 'She's Gone'을 불러 열광적인 환호를 받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서 음악을 포기하고 화가가 꿈이셨던 어머니에 의해 미대로 진학을 했다고 합니다.  신인을 꿈꾸기도 했었다고 하죠.  하현우는 대학교 근처 수퍼 앞을 지나가는데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노래 부를 줄 아세요?  스쿨밴드하는데 펑크 음인데 노래 잘 못불러도 돼요"라며 말을 걸어와 대학 스쿨 밴드 오디션을 거쳐 보컬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제대로 된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걷고 싶어 자퇴서를 내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하현우는 홍대의 인디씬에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생계가 어려워 음악 활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으며 의상 관련 일로 진로를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밴드의 꿈을 놓지 않은 하현우는 강원도에서 1년 반 동안 합숙하며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은 실내포차 '천둥 벌거숭이'에서 일하고 낮에는 미친 듯이 곡을 만들어 공연을 하며 1집 앨범을 탄생시켰습니다. 국카...

폴 모리아 시바의 여왕 히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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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모리아 시바의 여왕 폴모리아 악단 프랑스 부슈뒤론 주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폴 모리아는 작곡가이자 편곡가, 지휘자이면서 피아니스트, 쳄발로 연주자였으며 1925년 출생하여 2006년 81세로 사망하기까지 폴모리아 악단을 지휘하며 클래식, 이지 리스닝 등 많은 연주곡들로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폴 모리아 폴 모리아는 4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고 9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피아니스트를 꿈꿨으나 팝음악과 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7살에 오케스트라를 조직해서 활동했는데 자신만의 독특하고 현대적인 비트감으로 편곡해 세계적으로 많은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1941년 마르세이유 국립 음악원을 졸업한 이후 아마추어 재즈밴드를 결성하였고  스튜디오 디렉터로 활동하거나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1965년에는 폴 모리아 그랜드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Love Is Blue', L'Amour Est Bleu'가 5주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하여 5백만장이 팔리는 등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75년 첫 방한하였으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경음악으로 편곡하여 1976년 프랑스에 아리랑을 알리는 등 유럽에도 소개를 하였습니다.  1997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습니다.  폴 모리아는 2006년 프랑스 남부에 있는 페르비뇽 별장에서 지내는 중 급성 백혈병이 진단되었으며 10월 말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11월 3일 백혈병에 의한 심부전으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시바의 여왕은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남부에 있는 시바왕국의 여왕 바루키스를 일컫는 말입니다.  성경에도 언급되고 있는 시바여왕은 솔로몬 왕의 지혜를 테스트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그 지혜에 탄복하여 많은 진기한 보물을 선물로 주고 솔로몬의 아이까지 임신하여 돌아갔다고 합니다. 폴 모리아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김경호 노래 성대결절 음역대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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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호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노래 아시아 최정상 보컬리스트라 불리는 김경호는 1971년생으로 부모님이  아나운서 출신입니다. 김경호 1989년 KBS 제 2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꿈 그리고 사랑'으로 동상을 수상하고 199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긴 이별'로 동상을 수상하였죠.  김경호는 1994년 1집 앨범 '마지막 기도'로 데뷔를 했는데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했습니다.  1997년에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발표 때에는 머리를 기른다든지  변화를 주었고 폭발적인 무대 매너와 샤우팅, 음역대의 날카로운 고음과 두꺼운 미성 등 압도적인 라이브 무대로 크게 히트를 쳤습니다.  <SBS TV 가요 20> 에서 1주간 1위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2위를 <KBS 가요톱 10>에서는 DJ DOC, HOT,  임창정과 함께 1위 후보에도 올랐죠.  이어 2집 수록곡 '금지된 사랑',  2집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  4집 '비정', 5집 '와인'이 히트를 치면서 최정상급 록커이자 대중가수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앨범 발매 그 후 소속사를 나와 직접 발매한  6집 (2001) 앨범이 실패하고 성대결절까지 오게 되었는데 소속사와 계약 당시에 빡빡한 스케줄로 목을 혹사 당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경호는 5년의 전성기 동안 총 1000회가 넘는 무리한 라이브로 성대결절이 오고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함에도 전 소속사의 어마어마한 빚으로 활동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2003년에는 새로운 소속사를 만나 걸그룹 핑클의 <Now>를 리메이크하여 7집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번의 성대결절과 가성구 손상으로 혹평을 받으며 잊혀져가다가 2004년에 데뷔 10주년 7.5집을 발매하지만 활동은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김경호는 2006년 8...

김장훈 노래 가수 데뷔활동과 앨범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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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노래 앨범발매 기부천사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김장훈은  1991년 1집 '늘 우리사이엔'이라는 곡으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김장훈 김장훈은 7년간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는데 1998년 풀릴 때까지 언더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이유는 1990년 10월 작고한 김현식의 시상무대에서 내사랑 내곁에'를 대신 부르는 것이 김현식의 이름을 발아서 인기를 얻는 것 같아서였다고 합니다.  1993년 2집 앨범을 내고 1996년 3집 앨범을 내었는데 3집 앨범 타이틀 곡이 '노래만 불렀지' 입니다.  언더에서 활동하다가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대중가수로 데뷔를 하기로 했다는데 어린시절은 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김장훈은 어머니의 엄한 교육으로 17세에 가출해 검정고시를 봤다고 합니다. 기부천사 그리고 성대결절 1998년 4집에 수록된 '나와 같다면', '사노라면',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히트를 치며 인지도를 쌓아갔으며 대표적인 기부천사로 불리기도 하고 성대결절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1999년 5집 '오페라'가 라이코스의  병맛나는 광고에 삽입되어  인지도를 더욱 올리게 되었죠.  김장훈은 2000년 6집에서 '혼잣말', '나는 남자다'가 인기를 끌어 KBS 뮤직뱅크에서 1위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1년 7집을 발표하고 2002년 '긴급조치 19호'의 주연으로 출연하였으며 12월에는 UCLA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2005년에 8집, 2006년에 9집 'Honey'를 발표하였고 2012년에는 10집 Adieu (아듀) 의 수록곡 'Someday'발표하였습니다.  김장훈은 다양한 퍼포먼스로 유명한데  카이스트와 산업자원부까지 설득하여 휴보(한국과학기술원에서 개발한 인간형 로봇) 를 빌려 휴보와 함께 콘서트를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2015년 12월 21일에는  청주교...

김광석 노래 다시 부르기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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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 다시 부르기 노래  국내 작가들과 가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도 뽑힌 적 있는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태어나 1996년 1월 6일 사망한 비운의 천재 가수로 불립니다. 김광석 김광석은 중학교 때부터 다양한 악기를 배웠으며 고등학교 때는 합창단에 들었고 1982년 대학교 '연합메아리' 동아리에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여 1984년 김민기의 학전에 들어가서는 '노찾사'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하였으며 이는 김광석이 가수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광석은 1987년 노찾사의 첫 정기공연에 참여하면서 각종 집회에 단골로 초대되기도 하였으며 1988년 산울림 김창완의 권유로 7인조 그룹 동물원 1집 음반을 내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등의 많은 노래들이 있으며  이후 동물원은 해체됐습니다. 첫 개인 콘서트 그리고 앨범 발매 김광석은 1989년 솔로 1집 '기다려줘', '너에게'를 발표하며 첫 개인 콘서트를 시작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솔로 1집 '기다려줘', '너에게'를 발표하며 첫 개인 콘서트를 열었으며 1990년에는 1년의 앨애 끝에 결혼을 하였죠.  1991년 2집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 등을 발표하여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92년에는 3집 '나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을 발매하고 불교방송에서 DJ로도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93년 7월 다시 부르기 1집에 수록된 '거리에서', '광야에서' 등은 리메이크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1994년에는 한국 포크 음악의 계보를 정리한 '다시 부르기 2집'을 발표하고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열었습...

김범수 얼굴없는 가수 노래 나이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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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수 데뷔 앨범발매 나이  김범수는 1999년 1집 앨범 '약속(A Promise>로 데뷔하였으며 얼굴 없는 가수로 몇 년간 대중매체에 거의 출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범수 2003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여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 후 시청자 게시판에 의외로 좋을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김범수는 교과서적 완성형 보컬리스트로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으며 거의 모든 장르를 소화 가능하며 표현력이 뛰어나 애절하고 서정적인 발라드에 잘 어울리는 가수입니다.  가수 김범수가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뮤직비디오 2집 '하루', 2003년 '보고싶다'로 '보고싶다'는 뮤직비디오와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 OST' 로 삽입되면서 히트를 치게 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4집 타이틀곡 '가슴에 지는 태양'을 발표하고 2006년에는 5집 발표 후 군복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군복무 시절에즌 연예병사로 불려가 히트곡 '보고싶다'를 많이 불렀다고 하네요.  2008년 제대 후에는 6집 '슬픔 활용법' 2009년에는 데뷔 10주연 기념 디지털 싱글 'Slow Man'을 발표하였으며 2011년에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여 더욱 유명세를 떨쳤는데 김범수는 '나가수'는 가수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2집 타이틀곡 '하루 (Hello Good bye Hello)의 해외판 싱글이 빌보드 핫 세일즈 싱글 차트 50위권에 랭크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활동과 기획사 설립 2012년 10월 미국 카네기홀에서 겟올라잇 콘서트를 열었는데 아시아 가수 최초로 매진이 되었다고 합니다.  2013년 홍명보 자선 축구대회 '셰어 더 드림  (Share the Dream) 풋볼 매치 2013'의 테마송 'higher'를 발표하여 수익금을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하였...

JK김동욱 노래 앨범발매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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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K김동욱 노래 앨범발매   1975년생으로 2002년 1집 'Lifesentence'로  데뷔를 한 JK김동욱은 남자의 슬픔을 잘 표현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중저음의 가수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지극한 효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Jk김동욱의 원래 꿈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JK김동욱의 아버지는 장계현과 템페스트에서 베이스를 쳤던 김영무씨로 1997년 중앙 M&B에서 캐나다 이민기인 <여보 이민이나 갈까>라는 책을 발매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JK김동욱 2000년 SBS가 주최한 가요제 'netmusic 2000'에서 금상을 타고 2002년 데뷔를 하였지만 소속사에서 얼굴 없는 가수로 마케팅을 하여 잘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드라마 OST 위기의 남자의 수록곡 '미련한 사랑'이 크게 히트를 하였습니다.  JK김동욱이 부른 조폭마누라 OST '편지'는 임재범이 불렀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죠.  JK김동욱은 오케스트라 공연하기도 하였는데 2011년엔 tvN오페라스타 2011에서 특유의 중저음의 목소리로 오페라 바리톤 곡들을 훌륭하게 소화하여 극찬을 받도 준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JK김동욱이 나는 가수다에 출연을 하였을 때 2차 경연에서 맨발에 정장을 입고 나와 화제가 됐었는데 '조율'(원곡 한영애)을 불러 2위를 하며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지만 중간에 노래를 멈춘 사실이 논란이 되어 나가수에서 자진 하차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JK김동욱은 미투데이에서 천 명이 넘는 격려글에 감동을 받아 재즈앨범 'Zebra-pianto'를 무료로 공개하였으며 나는 가수다 2에도 출연을 하여 강산에의 '명태', 이연실의 '찔레꽃',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가왕전에서는 김현식의 '사랑사랑사랑', 신중현의 '미인' 등을...

김건모 나이 고향 노래와 발매한 앨범들 음반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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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모 국민가수, 한국의 스티비원더, 김건반 깜살, 연탄, 마른털, 쉰건모, 쉰둥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건모는 1992년 1집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데뷔하였습니다.  김건모는 1968년 1월 13일생으로 고향은 부산입니다 김건모 작곡가 윤일상이 낸 책 <나는 스무살이다> 에는 김건모를 조용필 다음으로 대단한 상상을 초월하는 최고의 가수라는 평을 하였다고 하는데 서울예술대학 재학시에는 천재로도 불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김건모는 많은 자작곡을 가지고 있으며 피아노 솜씨도 수준급이라고 합니다.  재즈와 소울을 기반으로 힙합, 레게가 가미된 '흑인 음악' 그 자체를 흥겨운 멜로디에 녹여내 새로운 대중음악의 길을 여는 역할을 하였으며 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중 1명으로 대한민국 최단 기간 최다 음반 판매량 기네스 기록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1994년 지상파3사 연말 가요제와 가요대전 등 대상을 휩쓸며 가요계의 전설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요.  한국에서 레게 음악이 유행하게 되는 계기가 된 '핑게', '잘못된 만남'은 역대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그 외 히트곡들이 많은데요 레게열풍과 국민가수 1992년 1집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발표하였으며  1993년 11월 후속곡 '첫인상'을 발표하여 가요톱10 5주 1위를 하여 골든컵으 수상하였으며 12월에는 2집  앨범을 발표하여 타이틀곡 '혼자만의 사랑'으로 자메이카 레게를 알리며 1994년을 레게열풍의 가요계로 만들었습니다.  1994년 음반 판매량 전체 1위를 차지하고 방송 3사 모두 대상의 기록을 세우며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1990년대 초중반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한국 가요계를 양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1994년에는 '믹스'라는 제목의 영화 주연으로 케스팅되기도 했습니다.  김건모를 끌어준 김창환과의 결별 이후 1996년 직접 프로듀싱한 4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