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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우 (국카스텐) 복면가왕 9연승, 가창력과 밴드, 이카타

국카스텐 하현우 음악대장 (복면가왕)  "국카스텐할 때 저희는 스스로 불량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또래 애들은 다  여행가고 하는데 나는 왜 공사 현장에서 먼지를 마셔야 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그래서 세상 다 부숴버리자 그런 말을 했고 합주하면서도 분노의 대상을 찾았다.  어릴 땐 멋모르고 세상이 우릴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너무 불평등한 것 같고 그랬다." 첫 솔로 미니앨범 발매 (Ithaca 이카타) 기념 감상회에서 하현우가 한 말이었습니다 첫 밴드활동 처음 밴드활동 할 때 패배주의와 분노, 화로 가득했었다고 합니다.  하현우는 이카타를 막연히 동경해왔는데 '이카타로 가는 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적 구상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하현우는 고등학생 때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노래방에서 연습을 했는데 'She's Gone'을 불러 열광적인 환호를 받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서 음악을 포기하고 화가가 꿈이셨던 어머니에 의해 미대로 진학을 했다고 합니다.  신인을 꿈꾸기도 했었다고 하죠.  하현우는 대학교 근처 수퍼 앞을 지나가는데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노래 부를 줄 아세요?  스쿨밴드하는데 펑크 음인데 노래 잘 못불러도 돼요"라며 말을 걸어와 대학 스쿨 밴드 오디션을 거쳐 보컬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제대로 된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걷고 싶어 자퇴서를 내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하현우는 홍대의 인디씬에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생계가 어려워 음악 활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으며 의상 관련 일로 진로를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밴드의 꿈을 놓지 않은 하현우는 강원도에서 1년 반 동안 합숙하며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은 실내포차 '천둥 벌거숭이'에서 일하고 낮에는 미친 듯이 곡을 만들어 공연을 하며 1집 앨범을 탄생시켰습니다. 국카...

김경호 노래 성대결절 음역대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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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호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노래 아시아 최정상 보컬리스트라 불리는 김경호는 1971년생으로 부모님이  아나운서 출신입니다. 김경호 1989년 KBS 제 2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꿈 그리고 사랑'으로 동상을 수상하고 199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긴 이별'로 동상을 수상하였죠.  김경호는 1994년 1집 앨범 '마지막 기도'로 데뷔를 했는데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했습니다.  1997년에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발표 때에는 머리를 기른다든지  변화를 주었고 폭발적인 무대 매너와 샤우팅, 음역대의 날카로운 고음과 두꺼운 미성 등 압도적인 라이브 무대로 크게 히트를 쳤습니다.  <SBS TV 가요 20> 에서 1주간 1위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2위를 <KBS 가요톱 10>에서는 DJ DOC, HOT,  임창정과 함께 1위 후보에도 올랐죠.  이어 2집 수록곡 '금지된 사랑',  2집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  4집 '비정', 5집 '와인'이 히트를 치면서 최정상급 록커이자 대중가수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앨범 발매 그 후 소속사를 나와 직접 발매한  6집 (2001) 앨범이 실패하고 성대결절까지 오게 되었는데 소속사와 계약 당시에 빡빡한 스케줄로 목을 혹사 당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경호는 5년의 전성기 동안 총 1000회가 넘는 무리한 라이브로 성대결절이 오고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함에도 전 소속사의 어마어마한 빚으로 활동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2003년에는 새로운 소속사를 만나 걸그룹 핑클의 <Now>를 리메이크하여 7집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번의 성대결절과 가성구 손상으로 혹평을 받으며 잊혀져가다가 2004년에 데뷔 10주년 7.5집을 발매하지만 활동은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김경호는 2006년 8...